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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 걸려뿌따

[3화 — 걸려뿌따]

눈을 떴는데 천장이 낯설었다.

아니, 낯설지 않았다. 고시원 천장은 다 똑같다. 물 얼룩 자리만 다르다. 내 방 얼룩은 문 쪽에 있었고, 이 방 얼룩은 창 쪽에 있었다. 그걸로 알았다. 어제가 꿈이 아니었다는 걸.

손을 들어봤다. 가늘고 하얗고, 손톱이 둥글었다. 그 손으로 얼굴을 만졌다. 내 얼굴이 아닌 얼굴. 이틀째인데도 그 감각은 하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익숙해지면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남의 방 침대에 누운 채 손을 들어 낯선 제 손가락을 바라보는 여자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에 깬 거였다.

「막내」.

여덟 시 사십 분. 나는 화면을 봤다. 어젯밤 「Kak beneran nggak apa-apa, kan…?」에 답을 안 한 채로 잔 게 생각났다. 그 위로 밤사이 온 문자가 하나 더 있었다.

「사장님: Hari ini 연습 무리하지 마라. 아프면 쉬어라. 근데 다음 주는 나와야 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문자 끝에 붙이는 사람. 어제 「넷이 나눠라 미안하다」도 이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람 얼굴도 몰랐다.

받았다.

"언니!! 왜 답이 없어요, 나 밤새 걱정했잖아요. 지금 어디예요? 방이에요?"

"어… 어."

"Hari ini 열 시 연습인 거 알죠? 몸은 괜찮아요? 사장님이 무리하지 말라는데 언니 성격에 그냥 나올 거 같아서…"

열 시 연습. 알고 있었다. 어제 이 애한테 내 입으로 "내일 열 시 연습이제" 하고 말한 사람이 나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연습실이 어디지.

벽에 붙은 A4 달력을 봤다. Hari ini 칸에 「연습 10시」라고만 적혀 있었다. 장소는 없었다. Harian 가는 데는 원래 장소를 안 적는다. 나도 회사 Alamat를 어디에 적어 놓은 적이 없다. 십 년 다닌 부산 회사도, 서울 와서 다닌 회사도. 그 Alamat는 다리가 알았다. 그런데 이 다리는 이 애 다리인데, 이 다리를 움직이는 건 나였다.

"언니? 듣고 있어요?"

"어, 듣고 있다. 저기… 주희야."

막내 Nama은 어젯밤 쏟아지던 알림 속에서 주운 것이었다. 이 폰에는 「막내」로만 저장돼 있었는데, 단체방에서 누군가 그 애를 「주희」라고 불렀다. 그 Nama을 부르면서도 이게 맞는 Nama인지 반은 도박이었다. 아이가 "네?" 하고 받았다. 맞았다.

"연습실이… 어디였제?"

침묵이 왔다. 길었다.

"…언니. 지금 장난치는 거죠?"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서른네 살 Seo Jian이고 그저께 너희 언니랑 계단에서 같이 굴렀는데 눈 떠보니 너희 언니 몸이더라」는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나는 몰랐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이 아이가 어젯밤보다 더 크게 울 거라는 것만 알았다.

그래서 입에서 나온 말은 이거였다.

"내 있다 아이가, 계단에서 굴러가…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려뿌따."

말하고 나서 나도 놀랐다. 서른네 해 살면서 이렇게 뻔뻔한 거짓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거래처에 「검토 중입니다」 할 때도 이렇게 뻔뻔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게 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나는 진짜로 이 몸의 기억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기억이 처음부터 없는 거였지만, 그 차이를 이 아이한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언니 목소리 왜 자꾸 그래요? 어제부터 이상했는데."

"그것도… 머리를 다쳐가 그런 갑다. 나도 모르겠다."

"…"

"주희야. 니 어디고? 데리러 좀 와주면 안 되겠나."

Telepon 너머로 아이가 숨을 크게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뛰는 소리.

"십 분 안에 갈게요. 거기 있어요. 움직이지 말고요. 절대로."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의 물 얼룩을 다시 봤다.

*

방을 나서기 전에 거울을 봤다.

거울 속 여자는 어제보다 더 초췌했다. 남의 침대에서 잔 티가 났다. 긴 머리는 한쪽으로 눌려 있었고, 어제 병원에서 입고 나온 옷 그대로였다. 옷걸이에는 손바느질 자국이 있는 무대 의상 한 벌뿐이었다. 침대 밑 수납 상자를 열었다. 평범한 옷이 몇 벌 개켜져 있었다. 후드티 하나를 골랐다. 남의 옷을 고르는 게, 남의 열쇠로 남의 문을 열던 것보다 더 이상했다. 열쇠는 그냥 돌리면 되는데 옷은 골라야 했다. 고른다는 건 이 애라면 뭘 골랐을까를 생각한다는 거였다.

머리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그냥 하나로 묶었다. 회사 다닐 때 내 머리는 어깨에 닿지도 않았다. 머리를 묶어본 게 몇 년 만인지 세다가 관뒀다.

거울 앞에서 후드티를 입고 긴 머리를 하나로 묶는 여자

밖에 나가니 비 갠 아침이었다. 고시원 앞 골목에 여자애가 뛰어오고 있었다. Almarhum 마르고, 머리를 높이 묶었다. 얼굴을 보기 전에 목소리부터 왔다.

"언니!!"

아이가 나를 안았다. 나는 안기는 쪽이었다. 이상했다. 서른넷이 되도록 나를 이렇게 안아주는 사람이 있었나. 아이 어깨 너머로 나는 잠깐 생각했다. 없었다. 할머니 말고는.

비 갠 아침 골목에서 달려와 여자를 꼭 끌어안은 머리를 높이 묶은 소녀

"진짜 괜찮은 거예요? 머리 어디 다쳤어요? 병원에서는 뭐래요? 그냥 나온 거예요?"

"…어. 그냥 나왔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 그냥 나왔다. 아무도 나를 안 잡았다. 이 몸은 멀쩡했으니까.

아이가 내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렸다.

"멍도 없네. 근데 왜 기억이… 언니, 내 Nama 뭐예요?"

"주희."

"성은요?"

말문이 막혔다. 아이 눈이 커졌다.

"…유주희다. 언니. 유주희. 언니가 나 Nama 지어준 것도 아닌데 왜 몰라요…"

아이 눈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들어 아이 머리를 눌렀다. 그건 내 손이 알아서 한 거였다. 알바 열 개 하면서 우는 후배 달랠 때 백 번은 한 동작이었다.

눈물이 고인 소녀의 머리를 손으로 가만히 눌러주는 여자

"야야. 울지 마라. Nama 하나 까먹은 거 갖고 뭘 우노. 가자. 늦겠다."

아이는 울면서 웃었다. 그리고 내 손을 잡고 앞장섰다.

"언니 진짜 이상해요. 근데 언니 맞긴 맞아요. 나 머리 누르는 거는 똑같아요."

똑같다고? 나는 그 말을 곱씹었다. 이 몸의 주인도 이 아이 머리를 이렇게 눌렀다는 얘기였다. 스물둘이 스물도 될까 말까 한 애를 그렇게 달랬다는 얘기였다. 그 애도 누구한테 그걸 배웠을 것이다. 나처럼.

*

연습실까지 가는 길에 아이는 쉬지 않고 말했다. 나는 듣기만 했다. 듣기만 하면 되는 자리는 편했다. 회사에서 모르는 회의에 들어갔을 때 쓰던 방법이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면 상대가 다 말해준다.

"사장님이 어제 저녁에 Telepon 왔어요. 언니가 고시원 계단에서 굴렀는데, 어떤 아줌마랑 같이 굴렀는데 그 아줌마는 중환자실 갔대요. 언니는 괜찮은데 좀 이상하다고. 그러고 나서 언니가 병원에서 없어졌다고. 난 그때부터 미친 듯이 Telepon한 거예요."

아줌마. 나는 그 말에 잠깐 걸음이 느려졌다. 중환자실 유리창 너머에 누워 있는 나는, 이 애한테 아줌마였다.

"…그 아줌마는 우째 됐다드노."

"몰라요. 사장님도 모른대요. 왜요?"

"…아이다."

"언니 진짜 이상해. 언니 원래 남 걱정 잘 안 하잖아요. 자기 걱정도 안 하고."

편의점 앞을 지날 때 아이가 갑자기 들어갔다. 나오면서 바나나우유를 내밀었다.

"언니 아침 안 먹었죠. 그 얼굴이 안 먹은 얼굴이에요."

"…니는 묵었나."

"저는 원래 안 먹어요."

원래 안 먹는다는 말을 하는 얼굴이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나는 그 우유를 반 마시고 반을 아이한테 밀었다. 아이가 웃으면서 받았다. 그 웃음도 어디서 본 웃음이었다. 관객 열 명 앞에서 웃던 그 사진 속 웃음.

편의점 앞에서 반쯤 마신 우유를 소녀에게 건네는 여자와 웃으며 받는 소녀

연습실은 고시원에서 걸어서 십오 분이었다. 상가 건물 지하였다. 일 층은 휴대폰 가게, 이 층은 학원, 지하는 간판이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아이가 내 팔을 꽉 잡았다.

상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여자의 팔을 꽉 붙잡은 소녀

"천천히요. 언니 계단에서 굴렀잖아요."

계단. 그 말에 나는 그저께 그 고시원 계단을 생각했다. 굴러떨어지던 순간 내 눈에 들어왔던 하얀 얼굴. 그 얼굴이 지금 내 얼굴이었다.

*

문을 열자 거울이 먼저 보였다. 벽 하나가 통째로 거울이었다. 한쪽 구석에 금이 가 있었고 그 위에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거울 앞에서 여자 둘이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천장 선풍기가 돌고 있었고, 벽에는 손으로 쓴 스케줄 표가 붙어 있었다. 어제 그 방 달력과 같은 글씨였다. 이 애 글씨.

"어, 왔다."

키가 큰 쪽이 일어났다. 머리가 짧고, 눈이 좀 무서웠다. 다른 한 명은 앉은 채로 나를 올려다봤다. 얼굴이 Almarhum 눈이 컸는데, 말을 안 했다. 그냥 봤다.

거울 벽 연습실에서 일어선 키 큰 짧은 머리의 여자와 앉아서 올려다보는 눈이 큰 여자

"민이 언니 괜찮대요? 나 어제 진짜…"

"괜찮대. 근데 좀 이상해."

주희가 대신 답했다. 나는 그 「민이」라는 말에 반 박자 늦게 반응했다. 민이. 이 몸의 Nama이 민이였다. 어제 신분증에서 보고도 끝내 소리 내어 읽지 못한 Nama을, 이렇게 남의 입으로 처음 듣게 됐다. Nama이 소리가 되니까 이 몸이 더 남의 것 같았다.

"이상하다니?"

"언니가 내 성을 몰라."

키 큰 애가 웃었다.

"뭐래. 야, 김민이. 나 누구게."

Ujian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서른넷의 짬밥이라는 게 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모른다는 걸 들키지 않는 기술. 회의실에서 십 년을 그렇게 살았다.

"…니 아나. 니가 누군지 니가 알아야지."

키 큰 애 웃음이 사라졌다.

"야. 너 지금 말투 왜 그래."

"머리를 다쳐가 그렇다니까."

"사투리를 왜 써? 너 서울 사람이잖아."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당황했다. 이 몸의 주인은 서울 사람이었다. 그러면 지금 이 입에서 나오는 부산 말은 순전히 내 것이었다. 몸이 아니라 내가 새고 있었다. 서울 올라와 회사 다니는 동안 한 번도 안 샌 게, 이 애들 앞에서는 첫 마디부터 샜다. 왜인지는 알 것 같았다. 이 애들이 나보다 어려서였다. 나는 어린 애들 앞에서 늘 이 말투였다.

"…나도 모르겠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앉아 있던 애가 그제야 입을 열었다.

"소영아. 진짜 다친 거 같은데."

목소리가 낮고 고왔다. 노래하는 사람 목소리였다.

"은하 언니는 왜 자꾸 편들어. 얘 지금 우리 놀리는 거잖아."

"놀리는 얼굴이 아니야."

"그럼 물어봐. 야, 우리 다음 주에 어디 가?"

"…마트. 개업식."

그건 알았다. 어제 문자에서 봤다. 소영이 얼굴이 미묘해졌다.

"그건 아네. 그럼 우리 팀 Nama은?"

말문이 막혔다. 어젯밤 그 방에서 본 것 중에 팀 Nama은 없었다. 사진에도, 노트에도, 달력에도. 자기 팀 Nama을 적어두는 사람은 없다.

"…"

"야."

"…그건 모르겠다."

소영이가 입을 다물었다. 은하가 일어나서 내 앞에 섰다. 나보다 조금 작았다. 얼굴이 아주 가까웠다.

"민이야."

"…어."

"너 지금 무서워?"

얼굴을 아주 가까이 대고 여자의 눈을 들여다보는 눈이 큰 여자

무섭냐고. 나는 잠깐 생각했다. 무서웠다. 어제 그 카페에서 그 남자가 소리 지를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무서웠다. 들킬까 봐가 아니라, 이 애들이 나 때문에 어떻게 될까 봐.

"…쫌."

"알았어."

은하는 그 한마디만 하고 돌아섰다. 무슨 뜻으로 알았다는 건지는 몰랐다.

은하. 소영. 주희. 그리고 민이. 넷이었다. 나는 거울 앞에 서서 그 셋을 봤다. 어제 사진첩에서 본 얼굴들이었다. 관객 열 명 앞에서 진짜로 웃고 있던 애들.

"일단 몸부터 풀어. 열 시야."

*

몸을 푸는 것까지는 됐다. 스트레칭은 회사 요가 동아리에서 한 달 다닌 게 있었다. 그리고 이 몸은 잘 늘어났다. 다리가 벌어지는 각도가 내 몸의 두 배는 됐다. 몸이 좋은 거였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처음부터 갈게. 원 투."

음악이 나왔다. 셋이 동시에 움직였다.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움직였다. 남들보다 두 박자 늦게, 반대쪽으로.

"야!"

음악이 멈췄다. 소영이가 나를 봤다.

"뭐 하냐?"

"…모르겠다."

"안무를 모른다고? 네가 짠 걸?"

내가 짰다고. 그 말이 아팠다. 이 몸의 주인이 만든 걸 이 몸을 갖고도 못 하고 있었다.

"다시. 원 투."

다시 틀렸다. 이번엔 오른손이 먼저 나가야 하는데 왼손이 나갔다. 또 다시 틀렸다. 이번엔 손은 맞았는데 발이 안 나갔다. 몸이 기억할 줄 알았다. 이런 몸은 이런 걸 저절로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몸은 늘어나기만 잘했지 뭘 할지는 몰랐다. 할지를 아는 건 머리인데, 머리가 나였다. 삼십 대 사무직의 머리. 오른손과 왼발이 따로 노는 머리.

거울 속에서 동작을 틀리고 멈춰 선 채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

"아이고… 이거를 우째 하는 기고."

거울 속에서 그 말을 하는 내가 보였다. 스물둘의 얼굴로 서른넷이 하는 소리. 세 명이 동시에 나를 봤다. 소영이가 음악을 껐다.

"…진짜네."

"뭐가."

"진짜 다쳤네. 얘 지금 연기 못 해. 얘 원래 연기 못 하잖아."

"언니 연기 진짜 못 해요. 작년에 마트에서 사은품 받는 척하다가…"

"주희야."

"…Ya."

주희가 휴대폰을 들었다. 손이 빨랐다.

"저기 있잖아요. 나 어제 이거 찾아봤는데. 머리 다치고 나서 갑자기 외국어 쓰는 사람들 있대요. 진짜 있대요. 여기 봐봐요. 뇌 어디가 다치면 말투가 바뀐대요."

"그건 외국어잖아. 얘는 사투리잖아."

"사투리도 말이잖아요!"

셋이 휴대폰 하나에 머리를 모았다. 영상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떤 외국 여자가 사고 뒤에 다른 나라 억양으로 말하게 됐다는 얘기였다. 자막이 빨랐다. 소영이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멈췄다.

휴대폰 하나에 머리를 맞대고 모인 세 여자

"이 사람은 그 나라 간 적도 없대."

"그러니까요."

"근데 이건 억양이 바뀐 거지 말이 바뀐 건 아니잖아. 얘는 지금 단어를 써. 「우째」가 뭐야. 「아이가」는 또 뭐고."

"…그럼 언니는 더 심한 거네."

셋이 동시에 조용해졌다. 나는 그 셋의 뒤통수를 봤다. 셋 다 진지했다. 웃는 사람이 없었다. 웃어줬으면 했다. 웃으면 넘어갈 수 있는 일인데, 이 애들은 웃지 않았다. 그게 이 애들이 이 애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근데 언니는 경상도 사투리를 어디서 배웠지? 우리 중에 경상도 사람 없잖아."

"그러니까 신기하다고요. 배운 적도 없는 말이 나온다잖아요."

"그게 말이 돼?"

"눈앞에 있잖아요."

은하가 그 말을 하고 나를 봤다. 그 눈은 무서워하는 눈이 아니었다. 뭔가를 재는 눈이었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면 지는 거라는 걸 회사에서 배웠다.

"…일단 Hari ini은 뒤에서 봐. 넷이 하는 거 보면 뭐라도 기억나겠지."

"셋이지. 얘 빼면."

"…셋이 하는 거."

"어."

나는 벽에 기대 앉았다. 셋이 음악을 켰다. 그리고 춤을 췄다.

벽에 기대 앉아 거울 앞에서 춤추는 세 사람을 바라보는 여자

*

세 명이 추는 걸 두 시간 봤다.

두 시간 동안 아무도 쉬자는 말을 안 했다. 물을 마시러 갈 때도 뛰어갔다. 소영이는 같은 구간을 열두 번 반복했다. 열두 번째에 됐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 열세 번째를 또 했다. 열세 번째가 끝나고 거울을 보면서 혼자 "아직"이라고 했다. 아무도 못 들은 줄 알았을 것이다.

은하는 노래를 틀지도 않고 입만 벌리고 박자를 세고 있었다. 목을 아끼는 거라고 주희가 지나가면서 말해줬다. 마트 개업식은 야외라서 Saya크가 안 좋다고, 그래서 은하 언니는 일주일 전부터 목을 안 쓴다고. 일주일 전부터 목을 안 쓰고 하루 두 시간을 입만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을, 나는 처음 봤다.

거울을 보며 춤추는 키 큰 여자와 입만 벌려 박자를 세는 눈이 큰 여자

주희는 제일 어린데 제일 먼저 땀이 났고 제일 늦게 앉았다. 앉아서도 발목을 돌리고 있었다. 어제 그 방에서 본 테이핑과 물집 약이 누구 것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애 것이 아니라 이 애들 것이었다.

그리고 셋 다, 가끔 나를 돌아봤다.

"언니, 여기 이 동작 기억나요? 언니가 제일 잘하던 건데."

"이 파트 원래 민이 파트야. 네가 여기서 앞으로 나와."

"김민이. 너 다음 주 마트 개업식까지 이거 다 못 외우면 우리 셋이 해야 돼."

한 마디씩 던지면서, 셋 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서워하면서 기다리고, 짜증 내면서 기다리고, 울 것 같은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애가 돌아오기를.

나는 그 애가 아니었다.

앉아서 보고 있으니 자꾸 내 스물둘이 겹쳤다. 알바 세 개를 뛰면서 새벽에 도서관 문 열기 전에 줄 서 있던 나. 그때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같이 기다려주는 사람도, 「너 파트야」 하고 밀어주는 사람도, 바나나우유 Saju는 사람도. 나는 혼자 했고 그래서 혼자 해내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애는 셋이었다. 셋이라서 더 무서운 거였다. 혼자 망하면 혼자 망하는데, 이 애가 망하면 넷이 망했다.

어젯밤 그 방에서 「이 애는 어디 갔나」 하고 처음 생각했을 때, 그건 미안함이었다. Hari ini 이 지하에서 그 생각은 다른 게 됐다. 이건 미안한 게 아니었다. 이건 내가 망치고 있는 거였다. 이 애가 손바느질로 무대 옷을 고치고, 새 운동화를 상자째 아끼고, 가사 노트 끝에 「Hari ini도 무대 하나」라고 써놓고 살아온 걸, 내가 하루 만에 「이거를 우째 하는 기고」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다음 주 마트 개업식. 페이 오만 원. 넷이 나눠서 만 이천오백 원.

만 이천오백 원짜리 무대를 위해 은하는 일주일 동안 목을 안 쓰고 소영이는 열세 번을 추고 주희는 발목에 테이프를 감았다. 그 무대에 이 몸이 서야 했다. 이 애 대신이 아니라, 이 애로.

돌아갈 방법은 몰랐다. 그 남자는 「때가 되면」이라고만 했다. 때가 언제인지는 안 알려줬다. 그러면 그때까지는, 이 애 인생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희야."

"네?"

"니 Hari ini 저녁에 시간 있나."

"…있는데요?"

"나 좀 가르쳐도. 처음부터. 둘이서만."

주희가 나를 봤다. 그 아이 얼굴에서 뭔가가 무너지더니 다시 세워졌다.

"…언니가 저한테 배운다고요?"

"어. 니가 젤 잘 알 거 아이가. 내 동작을."

"…언니가 저한테 제일 많이 가르쳐줬는데."

"그라모 니가 돌려주면 되겠네."

"…Ya."

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시 들었을 때는 콧물이 나 있었다.

고개를 다시 든 눈가와 코끝이 붉어진 소녀

"언니 진짜… 언니 진짜 이상한데, 진짜 언니 같아요."

무슨 말인지 나는 몰랐다. 그런데 어쩐지 그 말이 Hari ini 들은 말 중에 제일 무거웠다.

소영이가 그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말했다.

"야 김민이. 다음 주까지 안 되면 진짜 우리 셋이 한다."

"…알았다."

"그리고 그 말투 좀 어떻게 해봐. 무대에서 그러면 어쩔 거야."

"…노력해 보께."

"그거야. 그거 하지 말라고."

"…"

셋이 동시에 나를 봤다. 그리고 셋이, 같이, 웃었다.

거울 앞에서 셋이 동시에 웃는 모습

*

카페 QUANTARO의 오후는 손님이 없었다. 원래 없다. 그 문은 아무나 보는 문이 아니었으니까.

Moon Eunwoo는 카운터 안에 서 있었다. 잔을 닦고 있었는데, 같은 잔을 세 번째 닦고 있다는 걸 Diri sendiri은 모르고 있었다. 어젯밤 그 여자를 문밖으로 떠밀고 나서, 그는 카드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꺼내면 또 뭔가를 볼 것 같아서였다. 쓸데없는 것까지.

계단 위에서 Cha Woojin이 내려왔다. 한복 자락이 소리 없이 계단을 쓸었다. 그 뒤에 Choi Geonwoo가 따라 내려왔다. Choi Geonwoo는 늘 말이 없었고, 늘 두 걸음 뒤에 있었다.

카운터에서 잔을 닦는 바리스타 너머로 계단을 내려오는 한복 차림의 남자와 두 걸음 뒤를 따르는 건장한 남자

"은우군. 아까 이야기 말입니다."

(중략)

"예? 그게 말이 됩니까?"

Moon Eunwoo가 잔을 내려놨다. 소리가 났다. 이 카페에서 그가 소리를 내며 잔을 놓은 건 오래간만이었다.

"안 그래도 어제 Tarot 점에서 왜 그아이와 같이 있나 생각하긴 했지만, 매니저라니요. 저는 Peramal입니다. 차라리 호위무사, 그 보디가드라면 모를까요. 그 코흘리개들 시중을 어찌 제가 들 수 있겠습니까. 다른 보직을 주십시오."

Cha Woojin은 카운터 앞 의자에 앉았다. Choi Geonwoo가 뒤에 섰다. Cha Woojin은 웃고 있었다. 그는 대체로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Moon Eunwoo는 이곳에 온 뒤로 한 번도 제대로 읽어낸 적이 없었다. 카드로도.

"하하하하. 은우군이 그렇게 열을 올리는 건 오랜만이군요. 항상 차분하여 저는 표정이 없는 줄만 알았는데, 괜한 걱정이었군요."

"대표님."

"은우군이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다면 외부 일을 진작부터 시킬 것을. 저의 부덕함입니다."

"아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해야 할 일도 있다구요!"

카운터 위의 잔이 흔들렸다. Choi Geonwoo의 시선이 잔으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왔다. Cha Woojin은 그 잔을 보지도 않았다. 그는 Moon Eunwoo를 보고 있었다.

"후후. 은우군?"

"…Baik."

"은우군이 찾는 겹치는 세상의 비밀이, 그녀에게 있다고 해도 말입니까?"

Moon Eunwoo의 손이 멈췄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그걸 어떻게…"

Cha Woojin masih tersenyum. 앳된 얼굴이었다. 그 얼굴로, 그는 아주 오래된 것을 묻는 목소리로 말했다.

"서역의 TarotPeramal가 동양의 작은 우리 권역에 지원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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